형식이나 화성 그리고 선율이 베토벤과 비슷한 소나타를 쓴 현대 작곡가 한 사람을 상상해 보자. 심지어 이 소나타는 워낙 훌륭하게 작곡되어서 만약 그 곡이 진실로 베토벤의 것이었다면 걸작의 반열에 올랐으리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현대 작곡가가 쓴 작품이라면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작곡가는 잘해야 혼성 모방의 달인으로 찬사를 받을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사람들은 베토벤의 소나타 앞에서 미적 쾌락을 느낄뿐, 똑같은 스타일과 똑같은 매력을 지녔다 해도 현대 작곡가가 만든 소나타 앞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는 위선의 극치가 아닌가? 미적 감각은 본능적이며 감수성에 의해 자극되는 것이 아니라 날짜를 인지함으로써 결정되는 두뇌 활동인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역사적 의식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내재한 것이어서 이러한 시대착오(오늘날 지어진 베토벤의 작품)는 '자연스럽게'(즉 아무런 위선 없이) 우스꽝스럽거나 거짓되고 엉뚱한 것, 심지어는 흉측한 것으로까지 느껴질 것이다. 연속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너무나 강해서 이는 각 예술 작품을 지각할 때 마다 작용한다.
구조주의 미학의 창시자인 얀 무카로프스키는 1932년 프라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객관적인 미적 가치의 가정만이 예술의 역사적 진화에 의미를 부여한다." 달리 말해서 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역사는 그 연대기적 연속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거대한 작품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자면, 미적 가치가 지각되는 것은 예술의 역사적 진화의 맥락에서만이라고 할 수 있다.
(p. 13)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고민을 책에서 맞닥뜨려서 놀랍고, 반가웠다.
'대중 음악' 시장에서는 과거 거장들의 스타일을 모방한 음악이나, 고전이나 낭만 시대 이전 음악 스타일과 비슷한 음악이 실제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음악이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부터 이어져내려온 서양 음악, 아니 세계 음악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연속성'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