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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
- http://book.filltong.net/memo/5290 | 2008-09-03
- 일상. 그것은 단순히 권태, 사소함, 반복성, 범용성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공기의 마법과도 같은 것, 각자는 자기 삶에서 그것을 깨닫게 된다. 옆집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 사랑의 고통에 사로잡힌 학생이 한쪽 귀로 흘려듣는 교수의 단조로운 목소리, 이러한 사소한 상황들은 내적 사건에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함을 새기고, 이로 인해 그 사건은 날짜가 매겨지고 잊히지 않게 된다.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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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
- http://book.filltong.net/memo/5289 | 200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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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역사', '프랑스의 역사'라는 두 표현에서 각각의 보어는 다르지만 역사(histoire)의 개념은 의미가 같다. '인류의 역사', '기술의 역사', '과학의 역사', '이런저런 예술의 역사' 등에서는 보어가 다를 뿐만 아니라 '역사'라는 단어 또한 매번 다른 것을 의미한다.
위대한 의사 A는 어떤 병을 고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치료법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10년 후 의사 B가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이전의 (그러나 천재적인) 치료법은 폐기되고 망각된다. 과학의 역사는 진보의 특성을 지닌다.
역사의 개념이 예술에 적용되면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완성, 개선, 향상을 함축하지 않으며, 미지의 땅을 탐험하고 그것을 지도에 그려 넣으려고 시도하는 어떤 여행에 가깝다. 소설가의 야심은 이전 선배들보다 나아지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지 않았던 것을 보고 그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데에 있다. 북극 발견이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무효화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플로베르의 시학은 발자크의 시학을 폄훼하지 않는다. (p. 29) -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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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
- http://book.filltong.net/memo/5268 | 2008-09-02
-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 혹은 아이아스가 그 수많은 전투를 치른 후에 이가 모두 무사한지 여부는 묻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아픈 이나 빠진 이 등과 같이, 이는 영원한 관심사였다. "산초, 다이아몬드 하나보다 이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해." (p.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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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
- http://book.filltong.net/memo/5267 | 2008-09-02
-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는 "후대에 모범이 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모습의 인물들을 묘사"했다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돈키호테 자신은 따라야 할 모범에서 제외된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들의 미덕 때문에 찬양받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인물들은 이해받기를 원하는데 이는 완전히 다른 점이다. 서사시의 영웅들은 승리한 순간이나, 혹은 패배했다 해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위대함을 잃지 않는다. 돈키호테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위대함도 없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삶이 패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삶이라고 부르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설 기술의 존재 이유가 있다.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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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크로즈
- http://book.filltong.net/memo/5265 | 200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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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나 화성 그리고 선율이 베토벤과 비슷한 소나타를 쓴 현대 작곡가 한 사람을 상상해 보자. 심지어 이 소나타는 워낙 훌륭하게 작곡되어서 만약 그 곡이 진실로 베토벤의 것이었다면 걸작의 반열에 올랐으리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현대 작곡가가 쓴 작품이라면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작곡가는 잘해야 혼성 모방의 달인으로 찬사를 받을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사람들은 베토벤의 소나타 앞에서 미적 쾌락을 느낄뿐, 똑같은 스타일과 똑같은 매력을 지녔다 해도 현대 작곡가가 만든 소나타 앞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는 위선의 극치가 아닌가? 미적 감각은 본능적이며 감수성에 의해 자극되는 것이 아니라 날짜를 인지함으로써 결정되는 두뇌 활동인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역사적 의식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내재한 것이어서 이러한 시대착오(오늘날 지어진 베토벤의 작품)는 '자연스럽게'(즉 아무런 위선 없이) 우스꽝스럽거나 거짓되고 엉뚱한 것, 심지어는 흉측한 것으로까지 느껴질 것이다. 연속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너무나 강해서 이는 각 예술 작품을 지각할 때 마다 작용한다.
구조주의 미학의 창시자인 얀 무카로프스키는 1932년 프라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객관적인 미적 가치의 가정만이 예술의 역사적 진화에 의미를 부여한다." 달리 말해서 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역사는 그 연대기적 연속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거대한 작품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자면, 미적 가치가 지각되는 것은 예술의 역사적 진화의 맥락에서만이라고 할 수 있다. (p. 13) -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고민을 책에서 맞닥뜨려서 놀랍고, 반가웠다.
'대중 음악' 시장에서는 과거 거장들의 스타일을 모방한 음악이나, 고전이나 낭만 시대 이전 음악 스타일과 비슷한 음악이 실제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음악이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부터 이어져내려온 서양 음악, 아니 세계 음악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연속성'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인상주의 그림' 또한 마찬가지겠지. 미학에 대해 좀 더 공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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