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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를 남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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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크툼은 내가 사진에 덧붙이는, 그러나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 영화에서도 나는 영상에 무엇을 덧붙이는가?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스크린 앞에서 나는 눈을 감을 수 있을만큼 자유롭지가 못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눈을 뜨면서 동일한 영상을 다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연속적인 탐욕을 강요당한다. 또다른 특성들이 몰려들지만, 거기에서는 생각에 잠김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사진의 인화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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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미소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물을 촬영하는 목적은 그들을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쫓아내기 위해서이지. 나의 이야기들은 눈을 감는 하나의 방법이네." 사진은 말이 없어야만 한다. 그것은 '사려깊음'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의 문제이다. 절대적인 주관성은 하나의 상태, 즉 침묵의 노력 속에서만 얻어진다. 사진은 그 흔해빠진 수다스러움으로부터 끌어낼 때에 나를 감동시킨다. '테크닉' '현실감' '르포르타쥬' '예술' 등등이 바로 수다스러움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 눈을 감을 것, 하찮은 세부로 하여금 홀로 (푼크툼을 발견하게 하는) 감정적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도록 내버려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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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크툼적 독법은 간결하면서 동시에 적극적이고, 마치 야생동물처럼 재빨리 웅크린다. '사진을 현상한다'고 말하는 것은 용어의 술책이다. 그러나 화학적인 작용이 현상하는 것은 사실은 현상불가능한 것이고, (상처의) 본질이며, 변형될 수 없으며, 다만 온갖 절박함(절박한 시선)밑에 반복되는 그 어떤 것이다. 이것은 사진(어떤 사진들)을 하이꾸에 가깝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이꾸 역시 현상할 수 없기 때문인데, 하이꾸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수사학적 확대의 욕구 혹은 그 가능성조차 자극하지 않은 채, 주어진다. 이 양자를 보며, 우리는 생생한 부동성에 관해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즉 하나의 세부(하나의 기폭장치)에 연결된 폭약은 텍스트 혹은 사진이라는 창유리에 하나의 작은 별을 만들어준다. 하이꾸도 사진도 우리로 하여금 '꿈꾸게'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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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촬영장소인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특히 오르페우스 흉내를 내자면, 사진가가 인도하여 나에게 주는 것을 그 자신이 뒤돌아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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