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보 - 카메라 루시다 - 열화당미술선서 56

카메라 루시다 - 열화당미술선서 56
롤랑 바르트 지음, 조광희 외 옮김 | 열화당 | 1998년 6월 9일
카메라 루시다 - 열화당미술선서 56 알라딘 책 정보 페이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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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 h 님의 한마디
    관련강의록 퍼머링크예요. http://oida.haja.net/12 동영상기록이나 소리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싶으시면 http://oida.haja.net/14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2)   
  • h h 님의 밑줄
    푼크툼은 내가 사진에 덧붙이는, 그러나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 영화에서도 나는 영상에 무엇을 덧붙이는가?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스크린 앞에서 나는 눈을 감을 수 있을만큼 자유롭지가 못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눈을 뜨면서 동일한 영상을 다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연속적인 탐욕을 강요당한다. 또다른 특성들이 몰려들지만, 거기에서는 생각에 잠김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사진의 인화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카프카는 미소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물을 촬영하는 목적은 그들을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쫓아내기 위해서이지. 나의 이야기들은 눈을 감는 하나의 방법이네." 사진은 말이 없어야만 한다. 그것은 '사려깊음'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의 문제이다. 절대적인 주관성은 하나의 상태, 즉 침묵의 노력 속에서만 얻어진다. 사진은 그 흔해빠진 수다스러움으로부터 끌어낼 때에 나를 감동시킨다. '테크닉' '현실감' '르포르타쥬' '예술' 등등이 바로 수다스러움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 눈을 감을 것, 하찮은 세부로 하여금 홀로 (푼크툼을 발견하게 하는) 감정적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도록 내버려 둘 것.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푼크툼적 독법은 간결하면서 동시에 적극적이고, 마치 야생동물처럼 재빨리 웅크린다. '사진을 현상한다'고 말하는 것은 용어의 술책이다. 그러나 화학적인 작용이 현상하는 것은 사실은 현상불가능한 것이고, (상처의) 본질이며, 변형될 수 없으며, 다만 온갖 절박함(절박한 시선)밑에 반복되는 그 어떤 것이다. 이것은 사진(어떤 사진들)을 하이꾸에 가깝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이꾸 역시 현상할 수 없기 때문인데, 하이꾸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수사학적 확대의 욕구 혹은 그 가능성조차 자극하지 않은 채, 주어진다. 이 양자를 보며, 우리는 생생한 부동성에 관해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즉 하나의 세부(하나의 기폭장치)에 연결된 폭약은 텍스트 혹은 사진이라는 창유리에 하나의 작은 별을 만들어준다. 하이꾸도 사진도 우리로 하여금 '꿈꾸게' 하지는 않는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사진가의 투시력은 '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촬영장소인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특히 오르페우스 흉내를 내자면, 사진가가 인도하여 나에게 주는 것을 그 자신이 뒤돌아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늘 단일한 사진의 공간에서, 때로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참으로 드물게) 하나의 '하찮은 것'이 나를 끌어당긴다. '세부'의 존재가 나타나기만 하여도 나는 사진을 보는 나의 시선의 변화를 느끼며,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높은 가치로 표지된 새로운 사진임을 느낀다. 이 '하찮은 것'이 바로 (나를 찌르는) 푼크툼이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1)   
  • h h 님의 밑줄
    사진은 '현실'을 이중화시키지 않고 강조하여 변형시키고 흔들리게 만들 때 단일성을 갖는다. 거기에는 이중성이나 간접성, 교란이 없다. 단일사진은, 구성의 '통일성'이 통속수사학의 제1규칙이므로, 결국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 보도사진은 단일사진이다. 보도사진의 영상에는 푼크툼이 없다. 거기에는 충격은 있지만 혼란은 없다. 즉 단일사진은 소리칠 수는 있지만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 다른 형태의 단일사진은 포르노사진이다. (나는 성애erotique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성애는 혼란된, 균열된 포르노이기 때문이다.) 포르노사진만큼 동질적인 것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순박하고 고의가 없으며 타산적이지 못하다. (...) 마플레토르프(Mapplethorpe)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물로 짠 수영팬티를 촬영함으로써, 성에 대한 그의 거창한 계획을 포르노에서 성애로 이동시킨다. 이 사진이 단일성을 갖지 않는 이유는 내가 옷감의 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브레히트는 비판적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사진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연극도 미묘한 미학적인 특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 1937년 케르테츠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라이프]지의 편집자들이 그의 사진을 거부한 것은,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 이미지들이 '너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 문자와는 다른 - 생각하게 하고 암시하였다. 결국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찡그리거나 비난할 때가 아니라 생각에 잠길 때, 파괴적이란 특성을 갖는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초기에 '사진'은, 놀라움을 주기 위하여, 눈에 띄는 것을 촬영하였다. 그러나 곧, 잘 알려진 전도(轉倒)에 의해 사진은 자신이 촬영한 것을 사람들에 눈에 띄게 만든다. 그리하여 '하찮은 것'이 궤변적인 가치의 절정이 된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 h h 님의 밑줄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회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우리는 사진의 기원에 항상 니엡스와 다게르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다게르는 니엡스의 발명품을 표절한 다음 샤또 광장에서 빛의 움직임과 유희에 의한 회전그림연극을 상연했다. 요컨대 '어둠상자'는 원근화, 사진, 투시화를 동시에 보여주었으며, 이 세 가지는 모두가 바로 무대예술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진이 보다 연극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기이한 중계물을 통해서이다. '죽음'이 바로 그 중계물이다. (...) 최초의 배우들은 사자(死者)의 역할을 함으로써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켰다. (...) 우리가 사진을 아무리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하더라도, 사진은 원시적인 연극, 활인화(活人畵), 우리가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볼 뿐인 저 부동의, 분칠한 얼굴의 윤곽과도 같다.
    글 주소 복사 | 2008-03-31 |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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